사실 지금의 우리또래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 역시 재일조선인의 역사 혹은 실체에 대하여 무지하였다. 남한 계열의 민단과 북한 계열의 조총련으로 양분되어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정도를 알고 있었고, 21세기에도 김일성 초상화를 숭배하는 조총련은 북한과 매한가지의 정신나간 조직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지금의 시선이 아닌, 해방과 한국전쟁등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50년대와 60년대 초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때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착각이 조총련계는 이북 출신이고, 민단계는 이남 출신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다.그러나 재일조선인의 97%는 이남 출신이고, 당연하게도 조총련계 재일조선인 역시 대부분이 이남출신이다. 이남 출신의 재일조선인이 왜 북한을 자신의 조국으로 선택하게 되었는지는 역사적으로 복잡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패전 이후의 일본사회는 기성세대의 전쟁책임에 대한 반성등으로 좌파적 지식인들이 득세하는 추세였고, 많은 재일조선인들도 사회주의 이상향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좌파계열에 가담하였다. 또한 광복과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상 속에서 남한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북한에 비하여 나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이승만 정권은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한 정적견제라는 국내정치 상황에 신경쓰느라 재일조선인 문제에 거리를 두었다.
이에 비해 김일성 정권은 (그것이 사회주의 프로파간다의 하나에 불과했을지라도) 재일조선인에 대하여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해방이후 자의반타의반 일본에 머물게된 재일조선인들은 민족정체성의 유지를 위하여 민족교육을 강하게 열망하였고, 이를 지원하여 민족학교를 설립한 것은 북한의 지원을 받은 조총련계였다. 또한, 해방이후 수많은 재일조선인들의 일본에서의 사회적 차별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들 중 일부는 이러한 곤경을 피하여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였는데 남한은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결국 10만명에 달하는 재일조선인들이 북한으로 '귀국'하였다.
"북한행 엑서더스". 이 책은 이처럼 재일조선인의 역사에 큰 상처와 발자취를 남긴 '귀국사업' 혹은 '북송사업'의 전말과 그 뒤에 숨은 은밀한 역사를 파헤치고 있다.
귀국사업, 냉전의 한복판이었던 1959년부터 비교적 최근인 1980년경까지 9만3000명에 달하는 재일조선인이 북한으로 '귀국'한 역사적 사건을 말한다. 귀국사업이 절정에 달한 60년대 초반은 이미 일본이 전후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곧 세계일류 경제대국이 될 일본에서 전세계의 비난을 받는 '불량국가' 북한으로 1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의로 이주하였다. 이는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이다.
또한, 귀국사업은 시행당시 국제적십자위원회의 관여하에 '누구든 자신이 살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대단히 인도주의적인 슬로건 하에 시행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포장되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인도주의적 운동으로 보이는 귀국사업이 냉전시대 첨예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 거기에 귀국자 한명한명에 대한 인도주의적 고려따위는 없었다고 일갈한다.
실제로 귀국사업을 처음 원한 것은 일본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은 이류계층으로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실업, 빈곤에 시달리고 좌익적, 폭력적 성향을 지닌 문제집단이었고, 이들에 대한 사회복지비용의 지출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하여 일본정부는 이러한 이등시민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귀국사업을 생각해냈다.
귀국사업은 북한에게도 매력적이었다. 사회주의 이상향이 건설중이라는 국제적 프로파간다에 귀국사업만한 것은 없었다. 더구나 북한은 당시 일정한 노동력의 공급이 필요했고, 더욱이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한편, 조총련은 귀국사업을 주관하면서 일본전역에 조직을 확립하고 재일조선인 사회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소련은 귀국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종주국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하였고, 미국은 이 사업에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일본이 동북아에서 가지는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 문제에 침묵하였다.
이승만정권은 귀국사업에 극렬히 반대하였다.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인 남한 정권이 귀국사업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였을뿐, 재일조선인을 남한으로 귀국시킨다거나 이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적극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각국의 이해관계가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대대적으로 시행된 귀국사업의 피해자는 결국 일본과 북한 양측에서 자행된 교묘한 선전에 속아 '귀국선'을 탄 수많은 재일조선인들이었다. 당연하지만 귀국선을 탄 재일조선인들은 재일조선인 중에서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빈곤했던 이들이었다. 더이상 일본에서는 잃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이들은 사회주의 조국에 가면 동등한 기회와 평등, 그리고 집과 먹을 것을 준다는 프로파간다에 속아 귀국선에 올랐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귀국자 역시 대부분이 이남출신 혹은 아예 일본출생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거대담론 속에 이들은 단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들의 조국으로 귀국한 것이다.
이들 중 초기귀국자 일부는 실제로 어느정도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았지만, 대부분의 귀국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속았다고 느꼈지만,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후 북한의 참혹한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알고 있는 지금, 귀국자들의 삶이 어떠하였을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것이 '자신이 살 곳을 자신이 결정한다'는 인도주의인 선언을 담은 캘커타 협정에 위해 행해진 귀국사업의 속내인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각국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계산함에 바쁠때, 그 누구도 귀국자 개개인의 삶에는 관심따위 없었다고 폭로한다. 이 책은 실제로 귀국자 개개인의 삶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국제정치의 거대한 게임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망가져가는지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말한다. 귀국사업은 냉전시대의 지나간 역사적 사건이 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귀국자들이 북한에 생존해있고, 그들의 신산한 삶은 계속되고 있다고.
역사란 그런 것이다. 기록되는 것은 거대담론일 뿐이지만, 그 속에서 고통받고, 희생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가야하는 살아있는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는 묻혀지고 만다. 책을 덮으며, 가슴이 먹먹했다.

